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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3 오후 4:42:07 입력 뉴스 > 인문학강좌

[희망 메시지] ‘뜨거운 소금으로 살다’
충남 서산 강경환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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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일대에서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15년째 독거노인들이 사는 수십 채의 집 앞에 어김없이 맑은 천일염 30킬로그램들이 포대가 놓입니다. 하지만 누가 그런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야 비로소 그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직접 읍사무소로 소금포대가 가득 담긴 트럭을 몰고 와 대신 나눠달라고 자진신고를 해온 덕분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충남 서산 대산읍 영탑리에서 '부성염전'이라는 소금밭을 짓는 소금장수 강경환 씨였습니다. 그에게 굳이 다른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두 손이 없는 1급 장애인이라는 사실뿐입니다. 사실 그는 7년 전까지 기초생활수급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금농사를 지어 남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소근장수 강경환의 조막손은 날 때부터 기형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멋모르고 지뢰를 가지고 놀다가 그만 양 손목 아래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1972년 12월 24일 오전 9시 40분경, 13세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강경환은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았지만 딱히 힐 일이 없었습니다. 서산 벌말이란 곳에 살던 그는 해변을 거닐다가 깡통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에 달린 나비처럼 생긴 철사를 떼내어 가지고 놀겠다는 생각에 돌로 깡통을 두드려댔습니다.

 

그 순간 앞이 번쩍하면서 소년 강경환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묻어놓은 대인지뢰 즉 속칭 발목지뢰가 터진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잘린 것은 발목이 아니라 양 손목이었습니다. 폭발음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그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 갔지만 사흘 뒤 깨어나보니 손목 아래 두 손이 사라지고 없었던 겁니다.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꿈이었던 바닷가 시골소년의 인생이 엉망진창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양 손목 아래가 없어진 강경환은 중학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3년 동안 아예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주며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친정에 가셨는데 도무지 돌아오시질 않았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그는 굶어죽지 않으려고 혼자 밥을 개가 혀로 헤집듯 먹어야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살기 위해 석 달 동안 숟가락질 연습을 했습니다. 그 뒤로는 가까스로 혼자 밥을 떠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간신히 밥은 혼자 먹게 되었지만 양손 없는 인생에 희망은 종무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학교 갈 때 그는 근처 술집으로 가서 아침부터 밤늦도록 술만 펐습니다. 그렇게 의미없이 살아있다는 게 귀찮아서 농약 먹고 죽으려고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계기가 생겼습니다.

 

1980년 2월 18일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이날도 술에 찌든 채 아침에 깨어보니 책상 위에 <그루트기>라는 신앙잡지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뒤적거리다가 두 팔과 다리 하나가 없는 정근자라는 사람이 어느 교회에 와서 간증한다는 말을 듣고 두 팔과 다리 하나가 없다면 자기보다 더한 처지 일 텐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하는 생각으로 찾아가 보았던 겁니다. 그는 거기서 단박에 ‘아,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 같은 사람이 못 살라는 법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정근자라는 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잘살 수 있나요?”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이내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살 수 있다” 고! 그 후 강경환은 술을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손이 없었지만 어렵사리 삽질을 익히고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서 낫질을 하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1987년에는 교회에서 만난 정순희 씨와 결혼도 했습니다. 그러다 1994년 아버지 친구의 주선으로 염전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염전에서 쓰는 큰 삽은 농사 짓는 데 쓰는 삽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지만 그는 이내 양손 없이도 삽을 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냈습니다. ‘손 몽둥이 삽질’이 그것입니다. 손끝없이 몽당한 왼팔로 중심을 잡고 손 없는 오른팔을 삽의 세모진 곳에 넣어서 소금을 퍼 담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비장애인의 삽질보다 퍼나를 수 있는 양은 턱없이 적었습니다. 게다가 남들이 다섯 번 삽을 뜨면 그는 겨우 한 번 정도 삽을 뜰 만큼 속도는 더뎟습니다. 결국 그들 만큼 해내려면 남들보다 갑절, 아니 다섯 배는 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밤9시까지 염전에 물을 대고 새벽까지 소금을 퍼날랐습니다. 하루에 채 2시간도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습니다. 그는 그때 “노력도 노력이지만 인내라는 게 그리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고 말합니다. 이렇게 일하면서 그는 염전에 물을 대는 일부터 소금을 긁어모으는 밀대 작업과 삽으로 수레에 퍼 담아 소금창고로 이동하는 일 등 모든 과정을 손수 해냈습니다.

 

강경환 씨의 소금창고 옆 컨테이너로 만든 숙소엔 손때 묻은 성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펼쳐진 곳에 몽둥이 손으로 비뚤비뚤 그은 빨간색 볼펜 밑줄이 눈에 들어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 ․ ․ ․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富)하게 되느니라”라는 점엄서 6장 구절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개미처럼 열심히 일햇습니다.

 

소금 한 포대가 1만 원가량 하는데 그는 여기서 1000원씩을 떼서 모았습니다. 그걸로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소록도에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내는 일도 시작했습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그 일들을 계속한 겁니다. 강경환 씨가 부자여서 그렇게 한 게 아니었습니다. 남의 손을 거의 빌리지 않고 부부가 직접 염전을 짓는 강경환 씨의 ‘부성염전’은 1만2000평 정도로 한 해 소출이 약 6000만 원 정도입니다.

 

남의 염전을 소작하고 있는 것이라 이런저런 부대비용을 빼면 순수입은 한 해에 1800만원 원 정도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매년 400만 원 정도를 남을 위해 쓴 겁니다. 상식적으로 언뜻 계산이 안 나옵니다만 강경환 씨는 애초에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한 일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 조금만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겁니다. 소금 한 포대 팔아서 1000원 떼면 5000포대면 500만원이잖아요. 하지만 세상 이치라는 게 하나를 주면 그게 두 개가 돼서 돌아오고, 다시 그 두 개를 나누면 그게 네 개가 되어서 또 나눠져요. 연결에 연결. 그게 사는 원리지요.”(조선일보. 2009년 4월 10일자)

 

두 손 없이 소금을 만드는 사람, 그렇게 만들어낸 소금으로 세상에 사랑을 베푸는 사람. 그 ‘장엄한 소금장수’ 강경환 씨. 누군가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을 찾아 구경다닌다지만 그는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습니다. 긴 세월에 걸쳐 인내와 눈물로 만들어낸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인 것입니다. 셩경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돼라”고 했는데 강경환 씨는 그 자신이 소금을 만들고 소금을 나누며 정말 소금처럼 살고 있습니다(‘정진홍의 사람공부’ 라는 책에서 발췌)

 

 

 

 

 

 

 

 

 

합천인터넷뉴스(hci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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